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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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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개념
한옥(韓屋)이란 선사시대부터 이땅에 우리민족 고유의 기술로 지은 건축을 의미한다. 즉, 현대건축과 상반되는 개념의 용어이다. 우리는 한옥을 전통건축 또는 고건축(古建築)으로도 부른다. 한편 언제부터인가 한옥이 단순히 살림집으로만 한정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좁은 의미의 용어로 본래는 전통건축의 개념과 같은 한국의 전통집을 일컫는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한옥'이란 용어가 점차 '살림집'건축으로 굳어지는 경향이 있다. 근래에 출간된 많은 한옥관련 서적이 모두 주택개념으로 한옥이 소개되고 있고 매스컴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아마 우리의 전통집이 21세기에도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활용 될 수 있는 것은 주택이 제일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옥을 꼭 살림집으로 영역을 한정할 필요는 없다. 그 쓰임새는 개발여부에 따라 무척 넓을 수 있다.
근대건축 / 목포 구 일본 영사관
  • 목포 구 일본 영사관
  •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부산, 인청, 목포 등 개항지는 물론 서울 내륙에는 외국인에 의한 색다른 유형의 건물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즉, 공사관, 성당, 학교, 주택 등이 건립됐고, 그 후 일제강점기에도 전통건축과 전혀 다른 유형의 건물이 세워졌다. 이러한 건축물은 근대건축(近代建築)이라고 한다.
한옥의 시작 - 움집
한반도에는 개략 기원전 60만년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를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동굴이나 야외에 임시 장치물 등을 설치하고 살았다.
제대로 집의 형태를 갖춘, 즉 한옥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집은 개략 기원전 6,000년경(신석기 시대 전기)부터 지어졌다. 이 시기에는 인간이 한곳에 오랫동안 머무는 집단생활을 영위하였는데 오늘날로 보면 마을의 출현을 의미한다.
이시기에 지어진 집을 움집, 또는 수혈주거(竪穴住居)라고 한다. 집의 형태는 원형둘레에 통나무를 비스듬히 세워 중앙 한곳으로 모은 원추형으로 외부에는 나뭇가지나 풀 등으로 지붕을 만들었다. 평면은 직경이 5m내외이고 집 바닥은 지반면과 같게 한것이 아니고 0.5~1.0m정도 낮게 했다. 집 내부에는 불을 피우는 화덕이 있고 곡식 등을 저장하는 원추형 토기 등을 바닥에 묻어두기도 했다.
움집의 평면형은 초기에는 원형이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옆으로 긴 네모진 방형으로 변했다. 방형구조는 원형보다 공간적으로 더 쓸모가 있고 또한 기둥을 일렬로 배열할 수 있어 구조적으로도 안정이 된다. 즉 방형 평면이 원형보다 한층 진보한 구조이다.
4세기경의 주거지로 여겨지는 전남 함평 중랑유적지는 100여호가 넘는 대단위의 집단 취락지로 그 규모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주거 형태는 움집으로서 평면형은 주로 방형이다. 이 시기는 삼국시대가 시작된 시기인데 아직까지 지방 서민의 주거형태는 움집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100여호가 집단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은 완벽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한옥의 발전
선사시대를 지나 기원1세기경부터는 한반도에 강력한 왕권국가인 고구려(BC36 ~ AD668) 를 시작으로 백제, 신라 등 고대국가가 등장한다.
고대국가의 출현으로 왕이 거처하는 궁궐을 비롯하여 다양한 유형의 건축물이 한반도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이후의 기록인 구당서(舊唐書)에 따르면 "산곡을 따라 집을 지었는데 일반백성들의 집은 초가였고 절과 신당, 왕궁, 관아들은 기와지붕이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한편 종교 역시 전통건축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4세기부터 한반도에 전파된 불교는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찰이 융성과 쇠퇴를 거듭하면서 1500년 이상을 지켜오고 있다. 현재에도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는 과거에 없어졌던 건물을 복원개념으로 새로 짓거나 아니면 개량한옥식으로 현대적 사찰 건물을 건립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불교보다는 유교가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자리하면서 이와 관련된 종묘, 성균관과 향교, 서원, 재각 등 유교관련 건축물들이 전국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표1. 시대별 전통건축의 형성
시대 역사 및 사회적 배경 주요건축
전국 전남
선사시대 신석기, 청동기 시대 등 원시
공동체 생활
서울암사동 선사주거지,
여주 흔암리 주거지, 강화 고인돌
화순·장흥 고인돌, 영암 장천리
주거지, 승주 대곡리 유적
삼국 및
통일
신라시대
고구려(372), 백제(384),
신라(527)의 불교도입,
왕족 중심의 귀족사회,
삼국통일(668)
익산 미륵사(601년경),
경주 황룡사(553),
불국사와석굴암(8C),
평양 안학궁(427년경),
부석사(7C), 감은사(682)
화엄사(554), 송광사(신라말),
선암사(신라말), 미황사(749)
고려시대 불교 절대적 신봉(11,12C),
수도이전(개경),
무인집권(12C말)
수덕사 대웅전(1308),
부석사 무량수전(고려말),
봉정사 극락전(고려말),
강릉 객사문(고려말)
운주사 석탑(중기 이후)
조선시대 조선개국(1392),
수도이전(1394, 한양),
유교가 국가 통치이념,
중앙집권강화,
임진왜란(1592),
신분제의 와해와
신흥부유층 성장(조선후기),
개항(1876)과 함께 서양건축 유입
종묘(1395),
경복궁(1395),
숭례문(1448,재건),
도산서원 (1574),
병산서원(1613),
양동마을 (조선중),
하회마을 (조선중),
수원화성(18C말),
명동성당(1899)
무위사 극락전 (1430),
송광사 국사전 (조선초),
도갑사 해탈문 (1473),
소쇄원(1530년경), 녹우(15C중),
필암서원 (1590),
화엄사 각황전(1702),
위계환 가옥(1775), 운조루(1776),
나주향교 대성전 (조선초),
홍기응 가옥(1892),
이금재 가옥(1900년경),
목포 구 일본영사관(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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