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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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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구분

한옥은 사찰의 법당이나 향교, 서원 등 공공건물과 달리 매우 지역성이 돋보이는 집이다. 즉 지역의 자연환경, 거주자의 경제적 능력과 신분, 생활관습 등이 한옥의 형성과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로인해 다향한 유형의 한옥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포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한옥은 거주자의 신분이나 건축재료, 형태 등에 따라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구분을 할 수 있다. 거기에는 학술적인 분류도 있겠지만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한옥의 구분 -> 신분(민가, 반가), 형태, 평면형식(홀집, 겹집), 형태->지붕재료(초가집, 기와집, 너와집), 지붕형태(맞배집, 우진작집, 팔작집), 몸채형태('-', 'ㄱ','ㄷ','ㅁ' 자형집)

한옥의 구성요서 -> 자연환경(기후, 지형), 인문환경(신분, 풍습, 신앙, 풍수지리, 경제), 건축재료/기술

지역성 사례

지역성 사례 -> 온도가 낮은 북부 및 산간지방=>따뜻한 온돌형(폐쇄형), 따뜻한 남부지방=>서늘한 마루형(개방형)

신분층으로 구분

보통 한옥을 이해할때는 조선시대의 신분계층에 따라 지은 집을 살펴보는 것이 제일 편리하다. 이는 신분에 따라 지위 및 경제적 능력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조선시 대의 신분은 일반적으로 노비, 서민, 중인, 양반 등 4가지로 구분되었고 이들 집들은 모두 신분에 따라 집의 최대 규모가 주어졌다. 세종9년(1498)의 경우를 보면 대군은 60간, 군·옹주는 50간, 옹주·종친·2품 이상은 40간, 3품이하는 30간, 서인 10간으로 제한하였다. 즉, 서민의 경우는 아무리 능력이 있다해도 10간 이상의 집은 지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사규모의 제한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부농층의 증가, 상업의 발달로 인한 신흥부자출현, 신분계층의 동요 등으로 제대로 지켜지지는 않았다.
다음은 집의 구분이 애매하고 현재는 거의 없는 중인집과 노비집을 제외하고 양반집인 반가(班家)와 서민집인 민가(民家)만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 민가
  • 민가 : 민가란 과거 일반 서민들이 살았던 집을 총칭한다. 과거 전통사회의 지배구조는 양반과 서민으로 크게 양분되었고, 서민의 경제적 수단은 대지주의 토지에 의한 소작이 대부분이었다.
    살림집은 예나 지금이나 1차적으로 경제능력의 척도가 되고 있다. 더구나 봉건사회에서는 그 양상이 더욱 심했다. 지배층이었던 양반의 집은 당연히 규모와 형식면에서 크고 화려했지만 서민의 집은 그렇지 못했다. ·초가삼간 = 가난 = 서민· 이란 인식에서 보듯이 서민들은 최소한의 건축공간(안채와 부속채 1채 정도)만을 소유했다.
    민가는 형태상으로는 일부 너와집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볏집을 이용한 초가로서 시각적으로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평면구조 만큼은 지역성이 매우 돋보인다. 그러한 까닭은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포괄적으로 민가가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즉, 기후, 생활관습, 민속 등 세부사항이 민가건축의 디자인 요소가 되었다. 이는 고급주택인 양반집의 표준적 건축규범을 갖는 것과 크게 대조가 된다. 아쉽게도 민가는 현재 일부 문화재로 지정된 특정지역(낙안읍성 등)의 가옥만이 아니면 볼 수 없다. 근대화 과정에서 18 ~ 19세기에 지어진 가옥들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 반가
  • 반가 : 조선시대 양반(兩班), 즉 사대부(士大夫)들이 살던 집은 민가와 달리 조선후기는 물론 16세기경에 지어진 집들도 여러채있다. 지역적으로도 비교적 골고루 자리하고 있는 편이다.
    한편 구한말 이후 근대의 편익성을 따라 집을 짓는데 유리나 벽돌 등이 사용되었고 장식이나 평면구성 등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속에 지어진 집은 '근대한옥' 또는 '개량한옥' 이라고 한다. 전통한옥이나 근대한옥 모두는 당시의 역사적 환경을 최대로 수용했던 고급주택들이다.
    조선시대 반가구성의 제일 큰 배경은 역시 유교사상에 있다. 남녀유별에 의한 공간분리로 인해 안채와 사랑채가 등장했고 아울러 하인들의 거주공간으로 행랑채 등 격이 낮은 건물들도 짓게 됐다. 또한 주자가례의 보급으로 사대부집에서는 4대조의 신주를 모실 가묘, 즉 사당을 집안 경내에 지었다.
    한편 사대부들은 자신의 지위를 건축적으로도 알리려고 했다. 즉 규모도 크고 부재나 장식 등도 안채 등 다른건물보다 우월성이 드러나게 사랑채를 지었다. 이는 사랑채가 거주보다는 접객장소로서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16세기 이후 향촌의 씨족마을 전개는 반가의 정착과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종가를 중심으로 번창하는 문중에서는 많은 자손들이 좋은 집을 지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씨족마을로는 양동마을과 하회마을이 있는데 양동마을에는 서백당(書百堂), 향단, 관가정 등 많은 보물급 반가가 있고 하회마을에는 유성룡의 생가인 충효당(忠孝堂)이 있다.
지붕재료로 구분
초가집 : 주로 볏집을 이용하여 지붕을 이은 집. 일반 서민이 살던 집으로 1970~8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을 개량하기전 전국농어촌의 대부분 가옥이 초가집이었다.
기와집 : 흙으로 구은 기와가 지붕에 올려진 집, 조선시대 상류층인 사대부층 또는 조선후기에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기와집을 지었다.
너와집 : 산간에서 구하기 쉬운 적송이나 전나무 등을 길이40~70cm, 너비 20~30cm, 두께3~5cm 정도로 쪼개어 차곡차곡 지붕에 깔아놓은 집으로 주로 예전에 강원도 등 산간 지방에 많이 있었다.

초가집, 기와집, 너와집

지붕형태로 구분
맞배집 : 지붕구조가 제일 간단한 집으로 지붕면이 앞뒤에만 있고 측면은 없다. 즉, 추녀가 없다. 양 측면에는 삼각형의 모양이 생기는데 이곳을 박공이라고 한다. 한옥에서는 사당이 거의 맞배집으로 지어지고 기타 곡간채나 행랑채 등에서도 가끔 보인다. 안채나 사랑채 경우는 맞배집으로 짓지 않았다.
우진각집 : 지붕 전후와 좌우 네면 모두에 경사지붕이 있는 집이다. 따라서 네귀 모두에 추녀가 있다. 한옥에서 안채가 우진각 지붕으로 많이 되어있고 초가지붕은 모두가 이 형으로 되어있다. 한편 서울의 숭례문과 흥인지문, 수원 장안문과 팔달문 등 성곽의 성문도 우진각 지붕으로 되어 있어 주목이 간다.
팔작집 : 팔작집은 우진각 지붕의 양측면 지붕 중간쯤을 수직으로 잘라낸 모양의 지붕을 한 집이다. 수직처리 된 부분은 삼각형의 모양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합각이라고 한다. 이곳을 보통 판재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으나 벽돌이나 기와 등을 이용하여 다양한 무늬의 벽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팔작지붕은 궁궐이나 사찰의 법당 등 권위적인 건물에서는 꼭 쓰였고, 살림집의 안채와 사랑채 등에서도 많이 쓰였다.

지붕형태로 구분

몸채형태로 구분

한옥은 집의 평면구조가 그대로 외형이 되기 때문에 쉽게 외부에서 그 모습을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유형의 집은 지역별로 또는 시기별로 그 특징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한옥을 매우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ㅡ' 자형집 : 각실이 횡으로 나란히 들어선 집이다. 실의 배치가 단순하고 구조적으로도 간단하다. 이 유형은 한옥의 역사와 함께한 가장 보편적인 집의 형태로 여겨지며 용도도 안채와 사랑채, 부속채 등에 광범위하게 쓰여졌다. 지역적으로는 한반도에 널리 분포하나 기후적으로 따뜻한 전남과 경남 등 남부지방에서 특히 이 유형이 발달했다.
'ㄱ' 자형집 : 실이 옆으로 나란히 놓이다가 꺽이면서 직각으로 다시 실이 배치되는 유형이다. '곱패집' 또는 '곱은자집' 으로 불리는 'ㄱ' 자형 한옥은 한반도의 중부지방, 즉 경기도와 서울, 충청도 등 넓은 지역에서 지어졌다. 특히 경기도 지방에서 많이 보이며 남부지방 등 다른 지역에서는 간혹 보이는 정도이다. 이 집은 'ㄱ' 자 단독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으나 살림형편이 나아지고 가족이 늘어나면 제2의 'ㄱ' 자집(바깥채)를 지어 서로 마주보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네모난 안마당(중정)이 형성되면서 전체적으로 튼'ㅁ' 자형이 된다.
'ㄷ' 자형집 : 'ㅡ' 자형 구조에 앞쪽으로 거의 같은 길이로 돌출부를 둔 'ㅁ' 자형의 한옥을 말한다. 'ㄷ' 자형은 특히 영남의 북부지방에서 많이 보인다. 이 유형은 반가(班家, 상류주택)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나며 주로 안채가 이 유형으로 지어졌다. 실 배치는 안쪽 중앙에 가옥의 핵심인 안방과 대청이 주로 들어섰다. 한편 보성에는 돌출부가 후면쪽(뒷마당)으로 난 한옥(1900년대 초에 지은 이금재·이용우 가옥 안채)도 있어 주목이 간다. 또한 전남 영암 현종식가옥(1902년)은 앞뒤 모두에 돌출부를 둔 'H'자형으로도 건립됐다. 이러한 유형은 1919~1924년 사이에 지어진 충북 보은 선병국 가옥의 안채와 사랑채에서도 볼 수 있다.
'ㅁ' 자형집 : 'ㅁ' 자형은 중앙이 열리고 사방에 모두 실들이 들어선 유형이다. 즉 중앙에 네모난 작은 마당이 있는 아주 폐쇄형의 가옥이다. 실배치는 가옥의 핵심인 대청과 안방이 안쪽 중앙부에 배치되고 좌우로는 부엌과 작은방 등이 들어선다. 앞쪽에는 출입문만이 1칸 규모로 나고 기타 헛간 등이 배치된다. 이 유형은 경상북도 지방에서 주로 보이는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건립시기도 16세기까지 올라가는 매우 빠른 편이다. 대표적 주택으로는 양동마을의 송씨 종가인 서백당, 의성김씨 종가안채, 하회마을의 충효당과 양진당 등을 들 수 있다.

전남 무안 나상열가옥 안채(1912년) 'ㅡ'자형집, 경남 합천 묘산묵와고가 사랑채(조선중기) 'ㄱ' 자형집, 전남 구례 운조루 안채(조선후기) 'ㄷ' 자형집, 경북 양동마을 서백당(조선중기) 'ㅁ' 자형집

평면형식으로 구분
홑집 : 실들이 횡으로 한열을 이루고 있는집. 건축적으로 고루 분포하나 특히 따뜻한 남부지방의 민가에서는 이 형식이 주류를 이룬다. 방의 후면에도 문이나 창을 낼 수 있어 환기성이 좋고 집이 개방적이다. 이형식을 '외통집' 이라고도 한다.
겹집 : 실들이 상하로 해서 2열을 이루고 있는 집으로 홑집과 대조가 된다. 이 유형은 실이 겹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자연히 홑집에 비해 채광과 환기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보온 측면에서는 우수하기 때문에 추운 북부지방이나 산간지방에서 널리 이 형식을 채택했다. 겹집형식을 '양통집' 이라고도 한다.

홑집, 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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